"더는 못 버틴다" 한국 '탈출 러시'…동남아로 피난 행렬
"더는 못 버틴다" 한국 '탈출 러시'…동남아로 피난 행렬 © 제공: 한국경제
국내 제조업체가 내는 전기료가 지난 3년간 61.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한국전력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2021년 이후 일곱 번에 걸쳐 전체 산업용 전기요금을 63.3% 올린 영향이다. 이로 인해 3년 전만 해도 미국, 중국보다 저렴했던 한국의 전기료는 이제 30% 이상 높아졌다. 높은 법인세율, 과도한 규제, 적은 인센티브에 이어 급격하게 오른 전기료도 기업의 ‘탈(脫)한국’을 부르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경제인협회에 의뢰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의 연간 전기료는 2020년 257조원에서 지난해 416조원으로 61.9%(159조원) 늘었다. 제조기업에 적용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2020년 12월 ㎾h당 94.0원에서 작년 11월 153.5원으로 63.3% 올랐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가정용 전기요금은 38.8%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번 조사는 공장 증설 등 전기 사용량 증가에 따른 착시를 없애기 위해 2022년 사용량을 기준으로 2020년과 2023년 연간 전기료를 추산했다.
잇따른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국 제조업체의 전기료 부담은 미국 중국보다 높아졌다. 2021년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4.3원으로 미국(평균 99.8원) 중국(114.7원)보다 낮았지만, 작년 말에는 한국(153.5원)이 미국(112원) 중국(116.6원)보다 30% 이상 높았다.
업계에서는 송전에 드는 비용이 가정용보다 저렴한 산업용에 더 높은 요금을 책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산업용 전기요금(153.5원)이 가정용(149.8원)보다 높지만, 미국은 산업용(112원)이 주택용(222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류성원 한경협 산업혁신팀장은 “가정용 요금을 대폭 올리면 표가 떨어진다는 포퓰리즘이 작용한 것”이라며 “원가가 싼 산업용 전기료를 가정용보다 높게 매기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정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저렴한 전기료’와 보조금을 찾아 말레이시아(사라왁주 65.2원·OCI홀딩스 등 진출), 미국 텍사스주(77.6원·삼성전자 등 진출) 등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이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텍사스 77원, 말레이 100원, 한국 153원…"전기료 감당 안돼 뜹니다"
'반값' 동남아·美로 피난 행렬…전기료도 비싼데 증설 이유 없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제조업체 OCI홀딩스가 사업 거점을 옮기는 중대결단을 내린 건 2022년 3월이었다. 전북 군산 공장 설비를 전부 떼어내 말레이시아로 옮기기로 한 것. 생산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전기료가 가파르게 오른 탓에 한국에선 중국과 맞붙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OCI홀딩스는 대체 공장을 찾을 때 전기료부터 챙겼다. OCI 말레이시아 공장이 자리잡은 사라왁주의 전기료는 밤에는 킬로와트(kWh)당 41.2원, 낮에는 65.2원이다. 평균으로 따지면 한국(kWh당 153.5원)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낮은 전기료에 더해 2조원에 달하는 법인세 감면 혜택과 낮은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OCI홀딩스의 말레이시아 생산 원가는 한국의 절반도 안될 것”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서 사업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보다도 비싼 전기료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1년 처음 미국보다 높아진 뒤 점점 더 격차를 벌리고 있다. 22일 미국에너지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의 연평균 전기료는 kWh당 112원으로 한국(153.5원)보다 37.7% 낮다. 미국 전기료는 2020년 kWh당 94.7원에서 지난해 112원으로 18.3% 오르는데 그친 반면 한국은 94원에서 153.5원으로 63.3%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한 텍사스주(kWh당 77.6원)와 조지아주(83.4원)는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낮은 전기료는 직접 보조금과 함께 미국이 해외 기업을 유치할 때 쓰는 핵심 카드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전기를 많이 쓰는 반도체 공장을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 업체들이 미국 조지아주에 터를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태양광 업체인 한화큐셀은 아예 한국 공장(충청북도 음성)을 닫고 미국 조지아주에 새 둥지를 틀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로 과도한 규제와 높은 법인세율 등이 주로 꼽혔지만, 요즘엔 전기료를 얘기하는 기업인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전기료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되자 콧대 높던 유럽도 전기료 인하에 나섰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치솟는 전기료(kWh 370.3원)에 제조 업체들이 떠나자 독일정부는 지난해 11월 전기료에 부과되는 세금을 97% 감면해 주기로 했다. 독일 정치권은 도매 전력 가격이 kWh당 90.8원(6유로센트)을 넘을 경우 그 차액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요금제도 논의 중이다.
○전기료로 기업 유치하는 동남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낮은 전기료와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유혹에 생산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들이 줄줄이 엮어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절반 이하인 kWh당 60~70원을 받는 말레이시아의 사라왁주가 그런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평균 산업용 전기료는 kWh당 100원 안팎이지만, 주정부 재량으로 추가로 낮춰준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국내 제조기업들의 ‘단골 진출국’의 산업용 전기료도 kWh당 100원 안팎이다. 이들 역시 지방에선 60~70원대로 전기료를 낮춰준다.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해 배터리용 동박을 만드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와 SK넥실리스 등이 진출했다. 이로 인해 해외에 6개나 있는 국내 기업의 동박공장은 정작 한국엔 2곳 뿐이다.
여러 업종에서 한국과 시장점유율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기업들은 자국의 값싼 전기료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중국의 평균전기료는 115.7원이지만, 햇빛 좋고 물 좋은 신장위구르와 내몽고, 운남성 등지의 전기료는 60~70원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전기 요금이 지나치게 정치화돼 전기료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한국은 산업용 전기료가 가정용보다 훨씬 낮았지만 기업 특혜 논란에 현재는 역전됐다. 가정용 전기용이 2021년 1월 이후 2년 10개월 동안 38.8%오르는 사이 산업용은 63.3% 올랐다. 미국에선 산업용(112원)이 주택용(222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김우섭/성상훈 기자 © 한국경제








